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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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구에서 관리하고 있는 문화재는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562호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 와, 시지정문화재(7종)으로 유형문화재 제6호인 “논현포대”를 비롯하여 기념물 5종, 문화재자료1종을 보존관리하고 있다.문화재의 관리는 해빙기, 우기, 동절기 등 년3회 이상 일제점검 및 정비를 실시하고 있으며, 월1회 정기점검 및 각 문화재별로 현지에 거주하는 명예관리인을 선임하여 수시로 관리하고 있다.
총괄
남동구 문화재현황의 총괄을 구분, 총계, 국가지정문화재[국보,보물], 시지정문화재(구관리)[유형문화재, 기념물, 문화재자료]로 나누어 작성한 표
구분 |
총계 |
국가지정문화재 |
시지정 문화재 |
시등록 문화재 |
천연기념물 |
유형문화재 |
기념물 |
문화재자료 |
남동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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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정 유형문화재
시지정 유형문화재를 지정, 명칭, 수량(규모), 소재지, 소유자(관리주체), 지정일시로 나누어 작성한 표
지정 |
명칭 |
수량(규모) |
소재지 |
소유자(관리주체) |
지정일시 |
제6호 |
논현포대
논현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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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유형문화재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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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남동구 논현동 648-1(논현근리공원)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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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설명
이포대의 설치배경은 병인·신미양요를 거치면서 경기 연안의 군비강화 필요성을 절감한 정부가 해안을 통해 서울로 진입하는 외세를 사전에 방어하기 위해 어영대장 신정희와 강화유수 이경하에게 경기 연해의 군사시설을 확충토록 함으로써 1879년 축조되었다.
2개의 포좌로 구성되어 있는 이 포대의 축조형식은 아랫부분은 잡석으로 쌓고 중단과 상단은 어느정도 다듬은 장대석을 쌓았으며 귀위에 봉토를 함으로써 마감하였다.
또한 표좌에는 지형여건상 이동식 홍이 중포2문이 설치되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현재는 포좌만 남아 있으며 축조당시에는 지명을 따서 호구포대로 명명하였으나 현재는 논현포대로 부르고 있다.
포대 축조 후 이 포대는 인근에 설치되었던 묘도포대, 제물포대 등과 함께 화도진에 소속되었으나 1894년 화도진이 철폐되면서 이 포대도 폐쇄한 것으로 추측된다.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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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6㎡ |
남동구 논현동 648-1
(논현근린공원) 내 |
남동구 |
1982.3.2 |
시지정 기념물
시지정 기념물을 지정, 명칭, 수량(규모), 소재지, 소유자(관리주체), 지정일시로 나누어 작성한 표
지정 |
명칭 |
수량(규모) |
소재지 |
소유자(관리주체) |
지정일시 |
제3호 |
김재로묘
김재로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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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기념물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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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남동구 운연동 산 6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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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설명
김재로(1682~1759)의 자는 중래, 호는 청사로 숙종 28년(1702) 진사가 되고 숙종 36년(1710) 춘당대 문과에 급제하여 겸설서(兼說書)를 시작으로 관직에 나아간 후 부재학, 대사간, 우의정, 좌의정 등 내외 주요관직을 거쳐 영의정에 오른 인물이다.
특히 지춘추관사로 있을 때 실록도청 당상을 견직하여 [경종수정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판충추부사 때에는 주청사로 청나라에 가서 [명사]를 가져 오기도 하였다.
현재 운연동 만의골 입구 동산 정상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그의 묘에는 호석을 두른 봉분과 묘비, 상석, 망주석, 석구 한 쌍 그리고 장명등이 있으며 주위에는 곡장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시립박물관에는 그의 51세때의 모습과 36세때 모습을 그린 영정 2폭이 보관되어 있다.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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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434.3㎡) |
남동구 운연동 산 64-13 |
국토교통부
(청풍김씨종중) |
1990.11.9 |
제7호 |
조정만묘
조정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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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기념물 제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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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남동구 도림동 산 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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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설명
조정만(1658~1739)의 본관은 임천(林川)이며 자는 정이, 호는 오재(寤齎)이다.
송준길 문하에서 수학하여 숙종 7년(1681) 진사시에서 장원급제하고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이듬해에 윤증이 송시열을 배반한 사건에 대해 성균관 유생들의 소두(疏頭)가 되어 규탄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으며, 그 후 관직에 나아가 경향(京鄕)의 주요관직을 거쳐 성헌대부의 위계에 오르고 지중추부사에 올랐다.
현대 도림동에 위치해 있는 그의 묘역에는 사성이 쌓아져 있고 묘비, 망주석, 문인석 각 1쌍이 배치되어 있다.
또한 인근에는 높이 3.5m, 너비가 1m로 이의현이 찬하고 감진상이 쓴 신도비가 있다.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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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516.9㎡) |
남동구 도림동 산 46-3 |
임천조씨오제공파종중 |
1990.11.9 |
제50호 |
이여발 묘
이여발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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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기념물 제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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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남동구 운연동 3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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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설명
이여발(1621 ∼ 1683)은 조선의 무관으로 자는 군실(君實), 시호는 정익(貞翼)이며,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효종 2년(1651) 무과에 급제 비변랑(備邊郞), 도총사(都摠事)를 거쳐 숙천(肅川) 부사로 선정을 베풀어 거사비(去思碑)라는 송덕비가 세워졌다.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회령(會寧)부사에 발탁되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한흥군(韓興君)에 봉해졌으며, 현종 때 병조·공조참판에 특진하고, 평안도병마절도사로 나가 성을 수축하고 군사훈련과 병기의 정비에 힘써 북방 경비에 만전을 기하였다.그 후 어영대장, 한성부좌 ·우윤을 역임하고 숙종 때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에 이르렀다.
분묘의 형태는 호석이 없는 봉분앞에 비석과 상석이 배치되어 있으며 좌우에 망주석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 문인석 한쌍이 세워진 평범한 묘제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분묘앞 10여미터 아래로 신도비가 세워져있다.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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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 |
남동구 운연동 343-1 |
한산이씨정익공파종중 |
2002.2.4 |
제62호 |
월성박씨종중묘역
월성박씨종중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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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기념물 제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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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서창동 산29-41외 2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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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설명
월성박씨(月城朴氏)는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 제8왕자인 월성대군(月城大君)의 자손으로 고려 후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조선 전기와 중기에 크게 융성하였다. 중시조인 박구(朴龜,1337∼1404)는 고려 중군사정부령(中軍司正副令)을 역임하였는데, 고려가 망하자 이 곳에 칩거하면서 자신을 감춘다하여 호를 ‘장아(藏我)’라 하고 뒷산을 장아산이라 하였다. 장아산(해발 73.6m)서쪽 구릉에 위치한 월성박씨 종중 묘역에는 현재 박구와 그의 후손인 박간(朴幹), 박휘(朴徽), 박신겸(朴信謙),박호겸(朴好謙), 박홍중(朴弘中) 등 11기의 묘가 남아 있다. 그 중 통훈대부 추산(秋山) 박홍중은 조선중기의 문인으로 문장과 서예에 능하였고 관직을 물러난 후 장아산에서 후학을 지도하였다. 이 묘역에 있는 봉분과 묘표, 문인석, 망주석, 등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유교적인 묘제로서 특히 박휘와 박신겸, 박호겸의 묘표는 제작년대가 분명하여 조선 중기의 묘제와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금석문 자료이다.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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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8㎡ |
남동구 서창동 산29-41외 2필지 |
인천광역시
(월성박씨종중) |
2010.5.3 |
제63호 |
이승훈묘
이승훈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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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기념물 제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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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남동구 장수동 산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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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설명
조선 천주교 사상 최초의 영세자(領洗者) 이승훈(1756~1801)의 묘이다.
이승훈은 참판 이동욱의 아들로 태어나 1780년(정조 4)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 전심하다가 천주교인 이벽(李蘗)을 만나 천주교에 심취하였다. 1783년 부친을 따라 청(淸)나라에 가서 베이징[北京]천주교당 북당(北堂)에서 교리를 익힌 후, 이듬해 예수회(會)의 루이 드 그라몽 신부신부로부터 ‘조선 교회의 주춧돌이 되라’ 라는 뜻에서 베드로라는 이름과 함께 영세를 받고 한국 최초의 영세자가 되었다.
이승훈은 1785년 서울 명동의 역관집안 출신인 김범우의 집에 한국 최초의 천주교회를 창설,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교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침으로써 조선 천주교회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 후, 몇 차례의 배교와 복교의 과정을 거치다가 순조 1년(1801)에 일어난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박해 때 정약조, 최창현, 홍교만, 홍낙민 등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당하였다.
비록 몇 차례 배교했으나 조선에 천주교의 씨앗을 뿌린 선구자였던 이승훈의 유해는 만수동 남동 정수장 뒤편 초곡산에 묻혔으나 1981년 경기도 광주군 천주교 성지인 천진암으로 옮겨져 현재는 비석과 터(가묘) 만이 그의 아들 택규, 신규의 묘와 함께 남아있다.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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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0㎡ |
남동구 장수동 산132-1 |
학교법인
인천카톨릭학원 |
2011.12.28 |
시지정 문화재자료
시지정 문화재자료를 지정, 명칭, 수량(규모), 소재지, 소유자(관리주체), 지정일시로 나누어 작성한 표
지정 |
명칭 |
수량(규모) |
소재지 |
소유자(관리주체) |
지정일시 |
제19호 |
장도포대지
장도포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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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기념물 제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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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남동구 도림동 산 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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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설명
이 포대는 조선고종 16년(1879) 일본측이 서해안을 측량하면서 개항지를 탐색하는 것을 보고 인천을 개항 후보지로 요구할 것을 대비하여 어영대장 신정희와 강화유수 이경하가 인천과 부평 연안에 화도진을 설치하고 포대를 만들 때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서 1999년 "화도진도" 원본 확인을 통해 이곳에 3혈(穴)의 포대를 설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반사람들에게는 댕구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장도포대지는 소래포구에서 시흥시로 이어지는 소래철교 서북쪽의 끝, 협궤철도 남쪽변에 위치하고 있다. 당시에는 해발 약40m 정도의 구릉지였으나 수인선 철도를 놓을 때 산의 상당부분이 깍여 현재는 반쯤 남아있는 상태이며, 정상에는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을 뿐 포대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본래 이 섬은 모양이 노루처럼 생겨서인지 "장도(獐島), 노루목 또는 노렴"이라 불렸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섬이름이 댕구산으로 바뀌어 불려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포대를 설치한뒤 자연스럽게 댕구산으로 부르기 시작했으리라 추정된다.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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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5㎡ |
남동구 논현동 111-13 |
남동구 |
2001.4.2 |
시 등록 문화재
시 등록 문화재를 지정, 명칭, 수량(규모), 소재지, 소유자(관리주체), 지정일시로 나누어 작성한 표
등록 |
명칭 |
수량(규모) |
소재지 |
소유자(관리주체) |
지정일시 |
제4호 |
협궤 증기기관차 혀기-7형 |
1량 |
남동구 아암대로 1605,
소래역사관 광장 |
남동구 |
2021.8.9 |
국가지정문화재 및 등록문화재
국가지정문화재 및 등록문화재를 지정, 명칭, 수량(규모), 소재지, 소유자(관리주체), 지정일시로 나누어 작성한 표
지정 |
명칭 |
수량(규모) |
소재지 |
관리단체 |
지정일자 |
제562호 |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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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기념물 제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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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남동구 장수동 63-6외 3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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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설명
이 나무는 높이 30m, 둘레 8.6m, 수령 800여년에 달하는 노거수(老巨樹)로 5개의 가지가 균형을 이루며 뻗어 있어 아름다운 수형(樹形)을 이루고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마을 집안사람들이 집안에 액운이나 돌림병이 돌면 이 나무에 제물을 차려 놓고 치성을 올렸다고 한다.
또한 10여년전만 해도 마을 주민들이 매년 음력 7월과 10월에 제물을 차리고 풍년과 무사태평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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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 / 4,581㎡ |
남동구 장수동 63-6 외 |
남동구 |
202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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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관광과 / 문화예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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